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요한일서 3장 16절입니다. 이 구절은 짧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랑', 특히 그 사랑의 가장 깊고 본질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사랑을 갈망하지만, 정작 그 사랑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빛을 던져줍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
이 말씀을 천천히 곱씹어보면, 그 안에 담긴 무게와 깊이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즉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라는 선언입니다. 둘째는 그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된 것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 즉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권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사랑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사랑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삶 속의 실천이나 적용을 논하기에 앞서, 이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순수한 메시지의 본질에 집중하여 그 의미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랑의 확증: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말씀의 첫 부분,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는 기독교 신앙의 대전제와도 같습니다. 여기서 '그'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셔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거나 생각하는 수준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이 사랑은 자기희생적이며, 조건 없고, 무한하며, 능동적인 사랑입니다. 우리의 상태나 자격,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신 대상인 '우리'는 결코 사랑받을 만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자들을 향한 일방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목숨을 버리셨다'는 표현은 단순한 죽음을 넘어선 의미를 지닙니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티데미(τίθημι)'라는 동사가 사용되는데, 이는 '내려놓다', '두다', '맡기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목숨을 빼앗기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7-18절에서 예수님 스스로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연한 사건이나 비극적인 최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사랑의 절정이자 확증입니다. 그분은 죄 없으신 하나님이셨지만,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실보다 더 크고 분명한 사랑의 증거는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바로 이 엄청난 사랑의 사건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랑의 본질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인식과 마땅한 반응: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죽음은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라고 말씀하며, 그 사건이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에 대한 가장 완전하고도 명확한 교과서이자 계시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비로소 참된 사랑, 아가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눈으로 보고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감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 즉 '목숨을 버리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사랑을 알게 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말씀은 이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땅하니라'는 헬라어 '오페일로멘(ὀφείλομεν)'으로, '빚을 지다', '의무가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께 엄청난 사랑의 빚을 졌으며, 그 빚을 갚는 마음으로, 혹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형제들을 향해 동일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 '마땅함'은 율법적인 강요나 부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자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반응이며, 그 사랑에 동참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의 표현입니다.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초대교회 시대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순교하는 일이 있었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문자 그대로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 요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는 형제의 유익과 안녕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자신의 시간, 재능, 물질, 나아가 자신의 안위와 자존심까지도 기꺼이 희생하고 내어주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형제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그들을 섬기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어서 17-18절에서 이 사랑의 구체성에 대해 이렇게 부연합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는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 감상적인 동정심이나 입술의 고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과 섬김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것을 기꺼이 나누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랑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되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요한일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형제 사랑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그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서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일서 3장 16절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받은 사랑의 크기를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이끄는 초청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쩌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는 사랑입니다. 세상은 자기 이익을 우선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 하며, 받은 만큼만 되돌려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정반대입니다. 먼저 주고, 더 많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점은 바로 '생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일서 3장 16절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 앞에 겸손히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 높이와 길이를 측량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경험될 때, 우리는 비로소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동기를 얻게 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드리는 반응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요한일서 3장 16절은 우리에게 사랑의 원형을 보여주고, 그 사랑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임을 가르쳐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사랑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하고, 그 사랑을 더욱 깊이 알아가며, 그 사랑 안에 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를 넘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심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가 버리신 목숨, 우리가 아는 사랑
갈보리 언덕 위, 외로운 십자가
말없이 보이신 사랑의 크기라
핏방울 하나하나, 생명을 다하여
죄 많은 우리 위해 자신을 버리셨네
그 고통 없이는, 그 죽음 없이는
우리가 어찌 알리오, 사랑의 참 의미를
가시관 쓰신 머리, 창에 찔린 옆구리
모든 상처마다 새겨진 이름, "사랑"
이제 우리가 안다네, 그 깊고도 높은 뜻
형제의 아픔 앞에, 어찌 눈 감으리오
나의 작은 것, 나의 시간과 정성
기꺼이 내어줌이 마땅한 도리임을
혀끝의 고백 넘어, 손과 발의 섬김으로
그가 보이신 길 따라, 한 걸음 내딛네
목숨을 내어주신 그 사랑 본받아
우리도 서로에게 생명의 빛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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