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두려움과 마주합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재정적인 어려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어쩌면 가장 우리를 흔드는 ‘사람’에게서 오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직장 상사의 서슬 퍼런 눈초리,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동료들의 목소리, 나를 압박하는 경쟁자, 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관계의 갈등 등. 이처럼 ‘사람’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큰 두려움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두려움 앞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시편 56편 4절은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하고도 강력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할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4)
이 한 구절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우리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고 삶의 태도를 재정립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온 믿음의 선포
시편 56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혔을 때 지은 시입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 왕의 위협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신세였습니다. 적국인 블레셋의 가드 지역으로 피신했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과거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 출신임을 알고 그를 경계하며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그 어떤 인간적인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다윗은 이 기도를 올린 것입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시편 56편 4절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은 안락한 서재에서 나온 사색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터져 나온 영혼의 외침이자, 두려움의 실체 앞에서 드리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의지적으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할지라'
말씀의 전반부는 두려움을 이기는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보여줍니다. 바로 ‘의지’와 ‘찬송’입니다.
-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의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믿는다'는 감정적인 상태를 넘어,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댄다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내 힘과 지혜, 경험으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돈, 더 나은 인맥을 의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모든 것을 넘어,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맡기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나를 위협하는 ‘사람’에게서 눈을 떼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 그 말씀을 찬송한다는 것: 왜 하필 ‘말씀’을 찬송해야 할까요? 위기의 순간에 우리의 감정은 요동치고 상황은 계속해서 우리를 불리한 쪽으로 몰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즉 그분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것을 소리 내어 찬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행위가 아닙니다.
- 진리를 선포하는 행위: 두려움이 속삭이는 거짓말(너는 끝났어, 아무도 널 돕지 않아)에 맞서 하나님의 진리(내가 너와 함께한다)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 믿음을 강화하는 행위: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찬송할 때, 우리 자신의 귀가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은 더욱 굳건해집니다.
- 초점을 맞추는 행위: 문제의 심각성이 아닌, 약속의 위대함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에 나의 삶을 단단히 닻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이 구절은 시편 56편 4절의 백미이자, 믿음의 결론입니다. 이것은 오만한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을 철저히 비교한 후에 얻게 된 담대한 확신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을 ‘혈육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어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혈육’(flesh)은 히브리어로 ‘바사르(בָּשָׂר)’인데, 이는 연약하고, 썩어질, 유한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나를 두렵게 하는 그 사람도 결국은 시간과 공간에 갇힌 유한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두려워하는 대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 나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사
- 나를 음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 나의 성공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는 경쟁자
이들 모두가 아무리 강해 보이고 큰 힘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는 한계가 명확한 ‘혈육을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의 힘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들의 권세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 지점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영원하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내 편으로 삼고 그분을 의지하는데, 어찌 유한하고 연약한 피조물이 나를 영원히 해할 수 있겠는가? 라는 담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질문 앞에 세상의 모든 위협은 그 본래의 크기를 잃고 작아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주는 능력, 즉 ‘관점의 전환’입니다.
오늘 당신을 두렵게 하는 ‘혈육을 가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문제 앞에서 시편 56편 4절의 선포가 당신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의 파도가 밀려올 때, 감정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대신 믿음의 결단을 하십시오.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그분의 변치 않는 약속의 말씀을 소리 내어 찬송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속에서 담대하게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굳건한 반석 위에서
흔들리는 그림자가 나를 덮고
속삭이는 바람이 두려움을 실어올 때
나의 발은 모래 위에 서 있는 듯 위태롭네
세상의 거인들은 소리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장을 꿰뚫지만
나는 고개 들어 저 멀리 산을 보네
나의 피난처, 나의 힘이신 주
나는 주를 의지하고 그 말씀을 노래하리라
썩어질 육신이 어찌 나를 삼키랴
파도는 발밑에서 부서지고
거인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흩어지니
나는 이제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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