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성경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저는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신비함 때문에 한동안 그 의미를 깊이 파고들고 싶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단순히 겉모습이 깨끗하고 흠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한 존재가 하나님께 구별되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성경을 펼치면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장 2절)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문장은 곰곰이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요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룩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이나 자기 노력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거룩하다’는 표현에 다가갈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모든 것을 죄짓지 않고 완벽하게 지켜내야 겨우 거룩함에 이른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룩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내시고 변화시키시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결과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물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만 온전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중요한 핵심이었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따로 떼어 놓는다’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거룩은 평범한 것들 가운데 구별되어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상태를 떠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막이나 성전의 기구들을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용도로만 따로 구별해 두었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살아가며 세상의 여러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장 15절~16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 일상의 행동, 생각, 태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되어 가야 함을 알려줍니다.
제가 거룩을 묵상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거룩하다’는 것이 너무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곰곰이 살펴보면, 하나님이 죄를 완전히 떠나고 완벽한 사람만을 택하셔서 쓰신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의 여러 인물은 거짓말도 하고 잘못된 선택도 했으며, 신약에 나오는 제자들도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서 점차 거룩한 모습으로 빚어 가셨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놀라운 일들을 맡기셨습니다. 이를 보면 거룩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반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는 안도감을 얻게 됩니다.
저는 거룩을 이야기할 때, 삶의 구체적인 영역과 연결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단지 종교 행사에 참여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가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 재능, 관계를 어떤 자세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거룩함의 흔적이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도 내 말투와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조금 더 정직하고, 사랑으로 대하려고 애쓰고, 다른 이들의 필요를 살피며 배려한다면 그 순간에도 거룩함이 실천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물론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닫게 되지만, 그때마다 성경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장 17절)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단련해 가신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거룩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저는 종종 이사야 6장 3절에 등장하는 환상의 장면도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온 땅에 충만한 것은 그의 영광이로다”라고 찬양합니다. 이사야는 그 영광스러운 거룩의 현장을 보면서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정결하게 하시고,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결국 거룩은 우리를 죄의식에 얽매이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깨달음과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쓰임새에 참여하도록 불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편리하고 빠른 길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의 길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편이 뜨거워집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단순히 금욕적이고 경건해 보이는 외형을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점차 내면부터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는 매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내가 마땅히 어디에 속해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거룩을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가족, 이웃, 직장 동료들을 대하는 자세, 시간과 재정을 소비하는 방식을 비롯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위에 관여됩니다. 이를 통해 거룩은 종교적 의무감 이상의 실질적 삶의 동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친절과 정의,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순간에 ‘나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고, 그분의 성품을 따라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 자연스레 행동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물론 즉각적으로 완벽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해 볼 때, 조금씩 더 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 자체가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거룩에 대한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과연 내가 거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갈수록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약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니까, 현실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경에서,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이 거쳐 온 길에서 지혜와 소망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편지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거룩은 내 능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 속에서 내 마음과 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더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그것이 작은 거룩의 열매라고 믿습니다.
거룩을 묵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 속에서 다양한 갈등과 고민을 마주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빠르고 편리한 길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 둘이 충돌할 때마다 쉽사리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성경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 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은 땅에 발을 딛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려운 요구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된 초대이기도 합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때론 마음을 다잡는 작은 기도, 혹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 감사하는 습관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소해 보이는 실천들이 쌓여서 결국 거룩한 삶의 토대를 세워 간다고 느낍니다.
거룩이란 주제는 평생의 숙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라’는 말씀은 결코 우리를 짓누르기 위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깊이 사귀며 진정한 의미를 누릴 수 있도록 이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 거룩의 길을 천천히 걸어 가다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에 가까워지고, 그분이 주시는 기쁨도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내 일상에서도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의 힘이 제 삶을 풍성하게 채운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걸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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