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하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표현한 놀라운 찬양이자 감탄의 구절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전 장들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게 베푸신 계획과 섭리를 풀어내고, 그 결론부에 이르러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깊고 신비롭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몇 가지 사건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우주 만물과 인류의 구원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중과 목적에 대한 경외심 어린 표현입니다.
우선 “깊도다”라는 표현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말은 일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의 헤아릴 수 없는 심오함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 단어 하나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고 선포합니다. 사람이 가진 지식은 아무리 넓고 풍부하다 해도 결국 한계를 드러냅니다. 반면, 이 짧은 한 마디 “깊도다”라는 감탄사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무궁한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영역을 가리키면서, 결국 하나님만이 지닌 절대적 권능과 충만함을 드러냅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말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입니다. 단순히 지혜나 지식이라고 하지 않고, 그 앞에 “부요함”이란 단어를 붙임으로써 하나님의 속성이 어느 정도인지 암시합니다. 그분이 가진 지혜와 지식은 결코 제한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학문적 체계나 논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하고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바울의 서신 전반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꾸준히 높이는 이유는 결코 자신의 지식이나 경건을 뽐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모든 믿음과 깨달음조차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는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한 데서 나온 겸손의 표현입니다.
또한 “그의 판단은 측량하지 못할 것이며”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나 결정, 혹은 뜻을 의미하는 판단이 우리 인간이 흔히 재거나 가늠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측량한다는 말은 자나 기준으로 길이를 재는 듯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때, 흔히 우리의 논리나 경험, 합리성 등을 적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판단은 그런 도구로는 결코 재어볼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관점으로만 보면 때로는 하나님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바울은 그 깊이를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서 9장부터 11장에 걸쳐 논의해온 구원론, 선택,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마무리 지으면서 드러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인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길을 찾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찾는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방식으로는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도나 안내서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로가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을 때, 그 길은 늘 예측불허의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신약에 이르러서는 제자들 역시 하나님의 길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길을 따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방향과 계획이 결코 인간적 사고의 범주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신앙의 본질적 특징인 ‘믿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이 구절 전체가 의미하는 바는, 인간이 가진 어떠한 지식이나 논증, 혹은 문화적 배경이나 전통과 결합된 지혜만으로는 하나님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신비와 이스라엘 및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설명하다가, 더 이상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이렇게 찬양으로 마무리합니다. 바울이 굳이 논증을 지속하지 않고 갑작스러운 찬양으로 옮겨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일종의 전환점을 봅니다. 모든 말과 논리가 끝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경외와 찬탄, 그것이 바로 로마서 11장 33절에 담긴 핵심인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뉘앙스는, 바울이 매우 열정적으로 신학적 논리를 전개해 오다가, 끝부분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수긍하며 겸손히 고백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분명 로마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지성인이었고, 히브리 전통에도 정통했으며, 헬라 문화권의 철학적 논리 또한 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바울조차 “깊도다”라는 감탄사를 쓰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압도된 모습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모든 계획의 중심에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심을 선포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이처럼 로마서 11장 33절이 주는 메시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느끼는 경외감과 신비로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멀리 계시고 우리에게 접근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다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묵상하면서, 그 깊이를 측량하려 들기보다 경탄하고 찬양하는 태도가 더 합당하다는 사실을 전달합니다. 바울이 앞서 살펴본 구원역사의 흐름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위치, 이방인에게까지 확대된 은혜를 쌓아올린 결론이 결국 “하나님의 지혜는 너무 깊어 측량할 수 없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것이지요.
짧지만 강력한 이 말씀 한 구절이 우리의 지성과 이성을 뛰어넘어 영적인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도 바울이 느꼈던 그 감동을 함께 공유하는 일은, 성경의 본질을 이해하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믿음의 소중함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이해를 넘어서는 영역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놀랍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은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그 깊음 앞에 서서
끝없는 바다 앞에 서면
내 발길은 어느새 멈춰서고
파도소리는 말을 거두어
마음속을 조용히 적셔 주네
한 번에 다 볼 수 없기에
더욱 깊이 바라보게 되는
그 끝없는 수평선 너머
늘 새로운 빛이 비치더라
길을 찾으려 할수록
더 미로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길이
이미 그분 안에 숨쉬고 있음을
난 오늘도 깨닫네
그 깊은 지혜의 바다 앞에서
작은 나의 시선마저
말없이 감탄으로 바뀌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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