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예레미야애가 3:22-23 –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아침마다 새로워지는 신실함

일하루 2025. 3. 2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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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3장 22절부터 23절을 읽을 때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선포되는 특별한 희망의 메시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책은 예레미야가 경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에 따른 극심한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 그대로 ‘애가(哀歌)’임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애가의 중심에는 단지 슬픔만 자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그리고 신실하심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존재합니다. 다음은 개역개정판 성경의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부터 23절 본문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이 말씀을 천천히 살펴보면, 예레미야가 어떤 배경에서 이 고백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집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했고, 결국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흩어지며, 눈앞에는 참담함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그 모든 처절한 상황을 직접 목도하고 있었기에, 마음 깊은 곳까지 큰 상실과 슬픔으로 물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기록한 예레미야애가 3장에는 특별한 대조가 드러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한없이 무너지고 부서진 현실이 펼쳐져 있지만, 예레미야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인자와 긍휼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핵심 중 하나가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라는 표현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덕분에 아직 ‘끝’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인자”는 때로는 ‘변치 않는 사랑’ 또는 ‘헤세드(חֶסֶד)’라는 히브리어로 표현되곤 합니다. 이는 조건 없는 사랑이자 한결같은 은혜를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하나님의 인자가 언제까지나 무궁하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긍휼”이라는 말은 극진한 자비와 연민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받는 고통과 비참함을 보시고도 외면하지 않으시며, 여전히 붙드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긍휼”이라는 단어에 녹아 있습니다.

 

바로 이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기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멸된 가운데서도 “우리가 진멸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미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극심한 파멸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예레미야의 영적 시선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여전히 살아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있었고, 그것을 애곡의 중심에서 노래하듯 풀어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는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나는 절망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새롭고 풍성한 자비가 주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이 처한 고난이 제아무리 커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는 그 고난의 크기를 초월한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과거 어느 시점에만 머물러 있는 은혜가 아니라, 새로운 날이 밝을 때마다 다시금 체험할 수 있는 은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백을 가능하게 한 밑바탕에는,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라는 선언이 놓여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현실은 바뀔 기미가 전혀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붙든 한 가지 사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예레미야와 그 백성들의 상황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님 자신이 한결같은 분이시다’는 진리로 귀결됩니다.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해 무너진 도성, 그 가운데서 울부짖는 백성들의 모습은 진정 참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참혹함 한가운데에서 예레미야는 부서질 듯한 마음으로도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감히 “우리가 진멸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없었다면, 그가 보는 세상은 이미 의미도 희망도 모두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 희망이 여전히 존재함을 선언합니다.

 

돌이켜 보면, 예레미야애가의 배경 자체가 어두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지만, 이 두 구절은 밝은 빛을 담고 있습니다. 이 빛은 예레미야가 상황을 “좋게 해석”하거나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언약과 사랑을 통해 약속하신 바를 다시금 되새기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언은 결코 단순한 감상이나 바람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은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붙잡을 수 있었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의 신실함이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드러나는 핵심 메시지는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베푸시는 무궁한 인자와 긍휼의 존재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부터 23절은 애통과 황폐의 상황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돋보이게 만듭니다. 또한, 그 사랑이 매일 아침 새로워진다는 표현은 고통이 반복되는 환경조차도 넘어서게 하는 특별한 힘을 전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접할 때, 예레미야애가 특유의 슬픔과 탄식을 넘어, 고난 중에도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를 인식하는 고백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예레미야가 슬픔의 무게를 끌어안은 채로 이 고백을 기록했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멸망의 시기에 쓰인 애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노래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 구절의 감동과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든, 예레미야가 고백했던 구절에서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끝없이 이어지며 지금도 빛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절망의 언어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하나님의 다정한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결코 일시적인 위안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서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드는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아침마다 다가오는 인자와 긍휼

아직 어둠에 잠긴 마음을 열면
밤새 흐른 눈물 자국 위로
부드러운 빛이 찾아옵니다

 

한결같은 인자와 긍휼이
고요히 깨어나는 새벽 공기를 타고
내 안에 스며듭니다

 

찬란한 아침마다 새로워지는
그 신실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끝나지 않는 은혜를 헤아리며
오늘도 잠시 머물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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