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요한복음 15:9,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

일하루 2025. 3. 2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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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9절은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 단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이 크다’라는 단순한 사실만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묵상하다 보니, 그 사랑의 무게와 방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유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믿는 이들을 가지로 설명하시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관계를 연결해주시는 중심 주제가 ‘사랑’임이 드러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님께 임했듯, 예수님의 사랑도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바로 요한복음 15장 9절의 선언입니다. 이때 사용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근본 동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라는 표현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기독교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완전한 하나 됨과 깊은 친밀함으로 상징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모든 권능과 목적 안에 거하시면서 동시에 그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영원하며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이런 완전한 사랑이 예수님께로 흘러온 것처럼, 예수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이 9절에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주시는 분’이라는 차원을 넘어, 예수님 자체가 아버지의 사랑을 체현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라는 구절 역시 예수님의 주체성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대로 받은 수동적 대상이 아니시며, 동시에 자신도 우리를 향해 능동적으로 사랑을 베푸시는 주체이십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친히 택하시고 가르치시며, 그들의 부족함까지 감싸주셨던 여러 일화에서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예수님의 사랑은 제자들의 굴곡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인내와 자비, 그리고 또 그들을 진리로 이끄시는 권위가 함께 나타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라는 명령형 표현이 눈에 띕니다. 단순히 듣고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고 요청하는 듯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정적인 감정이나 막연한 추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연결된 영역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의 사랑이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그 사랑의 흐름 안에서 지속적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결국,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내밀한 영역으로 초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일시적 감동이 아니라 관계적 연합을 의미합니다.

 

이때 “거한다”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를 헬라어 원어로 살펴보면 ‘메노(μένω)’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단순히 ‘어디에 머무른다’는 물리적 위치 개념을 넘어, 관계적 결속을 강조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거하셨듯,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도록’ 초대하듯, 이것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결과 영속성을 내포합니다. 즉,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혹은 예수님 안에 있다는 존재론적 상태 자체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9절은 믿음의 길 위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려주는 분명한 통로가 됩니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15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 뒤에 제자들을 향해 새로운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서로 사랑하라”는 간명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 15장 9절과 연결하여, 사랑의 출발점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그 근원적 관계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곧 제자들이 서로 간에 나누어야 할 사랑의 모범이 되는 것이지요. 그 근원은 단순히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선포된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우리가 초대되었다는 사실이 9절에 집약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 15장 9절은 사랑의 심오함을 담은 구절입니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사랑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관계에서 흘러나온 완전하고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도 그 중심에서 하나 됨을 누릴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돌보시고,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하신 실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진술은 그냥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 생애와 사역이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온전한 진리의 선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한복음 15장 9절은 감동적인 문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다는 점, 그리고 그 사랑 안에 머물라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요청이 담겨 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아도, 어떤 계보나 약속, 사건이든 그 핵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재차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그 사랑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깊은 현현이 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 15장 9절을 되새기며,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에게 친밀히 다가오셨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누리는 온전한 관계가 예수님을 통해 나에게도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그동안 막연하게만 여겼던 ‘사랑’이 훨씬 더 분명하게 와 닿습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구절은 어떤 의무감이라기보다 은혜 어린 초대로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통해 아버지와 본인이 누리는 특별하고도 완전한 친밀함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고 믿습니다.

 

이 구절의 메시지를 되새길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은 단순히 관념이나 가르침으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동적이며, 듣는 이의 삶과 영혼 깊숙이 울림을 주는 생명의 목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이 예수님께로,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나에게로 흐른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야말로 이 말씀의 중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온 영원한 원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마치 무한히 넓은 바다 앞에 선 사람처럼 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의 초대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부르듯
그분도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완전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그 부름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이
한 방울도 빠짐없이
나에게 흐르고 있음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어느새 발걸음은
그분 곁으로 이끌려가
결국엔 사랑 안에 거하라고
속삭이는 음성을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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