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시편 145:9 깊은 해석 –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의 의미

일하루 2025. 3. 2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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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5:9 말씀을 깊이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단순한 인격적 특성을 넘어 전 우주적 의미를 지닌다고 느낀다. 해당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에 선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이 짧은 구절이지만,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무궁무진한 영역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먼저 ‘모든 것에 선하시다’라는 표현에 주목하게 된다. 이 말은 어떤 예외나 한계를 두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 선하고 악해 보이는 것을 구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만물 전체를 향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나타낸다고 여긴다. 세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부조리가 많다. 그렇지만 시편 145:9는 모든 상황을 넘어서는 크고 넓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미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비록 우리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선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이 말씀 속에는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본질적인 선함이 이미 펼쳐져 있다고 본다.

 

또한 이 구절은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라고 선언한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사랑, 자비, 연민 등 여러 의미로 풀어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 가운데서 ‘깊은 이해와 함께하는 연민’을 떠올린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존재를 향해 돌보시는 따뜻한 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느낀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종종 연약함과 슬픔, 상처가 뒤섞여 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모습은 단순히 말로만 전해지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품고 돌보시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말씀은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돌보심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구절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라는 표현 역시 눈길을 끈다. 어떤 특정 그룹이나 성격이 좋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와 온 세상에 두루 미치는 선함과 자비를 말한다.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선악을 구분하고 때로는 편견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시편 145:9 말씀은 나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관점에 조금 더 다가서도록 돕는다. 하나님은 내가 나누어 놓은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의 경계를 초월하여 모든 피조물을 향해 긍휼을 펼치신다. 그것이 바로 전능하신 분의 시선이자 은혜라고 느낀다.

 

이 구절에서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단순한 감정이나 반응 이상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 마음도 매순간 흔들릴 때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모든 존재에게 다가가는 하나님의 성품이 선하심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피조물을 향한 지속적인 돌봄과 연결된다는 점을 시편 145:9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깊고 풍성하게 나타나는 그 자비와 연민이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편 145편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주제와 그분의 위엄 및 자비가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다. 그중 9절은 그분의 선하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요약해 주는 핵심 포인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돌봄은 인간 세상 어디서나 귀하게 여겨지지만, 한계를 가진 존재끼리는 완전한 사랑을 실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편 145:9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베풀어지는, 무한한 폭과 깊이를 지닌 긍휼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열어준다. 하나님이 태초에 선하심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 선함을 거두지 않으며, 동시에 긍휼로써 그 피조물들을 품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많은 종교나 사상은 신이나 절대적인 존재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권능이나 위엄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시편 145:9의 특징은 그 권능과 위엄이 ‘선하심’과 ‘긍휼’이라는 온유한 방식으로 완성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분노나 징벌 같은 성격보다 먼저 깔리는 기본 토대가 ‘선함’이라는 점이 강조된다고 본다. 물론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도 성경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시편 145:9를 자세히 읽으면, 그 심판과 공의조차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한다는 맥락이 연상된다. 모든 것에 선하시기 때문에 심판이나 권능 행사도 결국 사랑과 긍휼의 연장선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가 결코 의미 없이 여겨지지 않음을 다시금 느낀다. 어떤 존재가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가진 선하심과 긍휼의 관점에서는 소중하고 귀중하게 다루어진다. 그 가치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시편 145:9가 말하는 진리가 단지 한 순간의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를 나타낸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본성은 그분이 하신 모든 일과 약속에 반영되어 나타난다고 믿는다.

 

시편 145:9가 전하는 메시지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그 말씀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향한 선함’과 ‘모든 것을 품는 긍휼’은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더 깊이 감사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매번 시편 145:9를 읽을 때마다 우리와 세상을 향해 열린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결코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세상 모든 이들이 경험하는 각기 다른 고난과 갈등 속에서도 그분의 긍휼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무수한 문제들은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시편 145:9는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더라도, 그 선함과 긍휼이 우주적 범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이 구절이 전하는 크나큰 위로이자 소망이라 생각한다. 결국,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마땅히 가지셔야 할 온전한 책임과 배려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계신다고 볼 수 있다.

 


내 마음에 비추는 선하심의 노래

 

약속처럼 스며드는 선하심
한낱 이슬 같은 나를 기억하시고
오늘도 긍휼의 빛으로 모든 것을 감싸시는
그분의 시선이 내 영혼을 물들이네
잊힌 것 없는 자비의 목소리가
바람 같은 위로로 불어올 때
나는 그 넓은 품 안에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듯 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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