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이야기

지혜의 왕, 그림자를 드리우다: 솔로몬의 빛과 어둠

일하루 2025. 4. 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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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태양은 눈부셨지만, 늙은 왕 다윗의 눈에는 흐릿했다. 그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미래는 안갯속이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는 살얼음판 같았다. 야심만만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세력을 규합하자, 다윗의 충실한 예언자 나단과 지혜로운 아내 밧세바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심장에는 단 하나의 이름, 솔로몬이 새겨져 있었다.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 그는 아직 청년이었고, 아버지의 카리스마나 형들의 노련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남다른 총기가 서려 있었고, 그의 어머니 밧세바는 아들의 잠재력을 믿었다. 나단과 밧세바의 설득에 다윗 왕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내 아들 솔로몬을 기혼 샘으로 데려가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라! 그가 내 뒤를 이을 것이다." 다윗의 마지막 힘을 짜낸 명령은 예루살렘에 울려 퍼졌고, 아도니야의 잔치는 순식간에 불안감으로 얼어붙었다.

 

솔로몬은 제사장 사독과 예언자 나단, 그리고 아버지의 충성스러운 용사 브나야의 호위 속에 왕위에 올랐다. 갑작스럽게 어깨에 짊어진 왕관의 무게는 실로 엄청났다. 그는 젊었고, 경험은 부족했으며, 거대한 왕국을 다스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쳤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어느 날 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나님의 음성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솔로몬은 부귀나 명예, 혹은 원수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겸손히 아뢰었다.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능히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그는 왕국의 가장 큰 필요, 즉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릴 지혜를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셨다.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의 약속은 곧 현실이 되었다. 솔로몬의 지혜는 온 이스라엘에 알려졌고, 그의 명성은 주변 나라들에까지 퍼져나갔다. 그의 지혜를 시험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은 두 여인의 재판이었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 앞에 선 솔로몬. 그는 칼을 가져오게 하여 살아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씩 주라고 명했다. 군중은 숨을 죽였다. 그때 한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살려달라고, 차라리 저 여자에게 주라고 애원했다. 다른 여인은 태연히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고 말했다. 솔로몬은 즉시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임을 선언했다. 그의 판결은 단순한 영리함을 넘어선, 인간의 본성과 모성애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백성들은 왕을 두려워하며 존경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와 함께하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통치는 안정과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이 물려준 왕국을 더욱 공고히 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전국을 열두 행정 구역으로 나누고 장관을 두어 효율적인 세금 징수와 자원 관리를 가능하게 했다. 그의 탁월한 외교력은 두로 왕 히람과의 동맹으로 이어졌고, 이는 훗날 성전 건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집트 바로의 딸과 정략결혼을 통해 남방의 강대국과도 평화를 유지했다. 그의 식탁에는 매일같이 풍성한 음식이 올랐고, 그의 마구간에는 수많은 말과 병거가 가득했다. 이스라엘은 전례 없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마음속에는 늘 아버지 다윗의 유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렸기에 성전 건축의 영광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솔로몬은 이 거대한 과업에 온 힘을 쏟았다. 두로 왕 히람은 백향목과 잣나무, 그리고 뛰어난 기술자들을 보내왔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부역에 동원되었다.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예루살렘 모리야 산 위에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성전 봉헌식 날,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며, 이방인이라도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들어달라는 간절한 내용이었다.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랐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나 동시에 엄중한 경고도 덧붙이셨다. 만일 솔로몬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이 성전이라도 내던져 버릴 것이며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그의 지혜와 부에 대한 소문은 멀리 스바(Sheba)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여왕은 낙타에 향료와 금, 보석을 가득 싣고 어려운 질문들을 준비하여 솔로몬을 찾아왔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답변과 궁전의 화려함, 신하들의 질서정연함, 그리고 성전에 올라가는 웅장한 행렬을 보고는 넋을 잃을 정도였다.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와서 친히 보기 전에는 믿지 아니하였더니,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칭송하며 가져온 귀한 예물들을 바쳤고, 솔로몬 역시 그녀에게 후한 답례품을 주어 보냈다.

 

솔로몬의 시대는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은이 돌처럼 흔했고, 백향목은 평지의 뽕나무처럼 많았다. 그의 해상 무역 함대는 3년마다 한 번씩 금과 은, 상아, 원숭이, 공작 등을 실어 날랐다. 그의 지혜를 들으려는 왕들과 사신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솔로몬은 잠언과 시, 노래를 지었고, 초목과 짐승, 새와 물고기에 대해 논하는 박식함을 자랑했다. 그는 지혜의 왕, 평화의 왕, 부귀영화의 왕으로 불렸다.

 

그러나 영광의 정점에서 그림자는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솔로몬의 몰락은 그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이었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국제적인 평화와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맺었던 수많은 정략결혼. 그는 바로의 딸 외에도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족속의 많은 여인을 사랑했다. 성경은 그에게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었다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방 여인들과의 통혼을 금지하셨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했던 솔로몬은 이제 나이가 들면서 여인들의 아름다움과 그들이 가져온 이국적인 문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에는 외교적인 배려였을지 모른다. 아내들의 고향 신들을 위해 작은 제단을 마련해 주는 것. 그러나 점차 그 경계는 허물어졌다. 솔로몬은 그들의 신들을 용인하는 것을 넘어, 직접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짓기 시작했다. 예루살렘 맞은편 산에는 그모스와 몰렉을 위한 산당이 세워졌고, 다른 이방 여인들을 위해서도 그와 같이 행했다. 한때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던 그의 마음은 이제 수많은 신들로 나뉘어져 버렸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 경고하셨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타올랐다.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인 파멸이 아니었지만, 왕국 분열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에돔 사람 하닷, 다메섹의 르손과 같은 대적들이 일어나 솔로몬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했다. 솔로몬의 신하 중 능력 있는 자였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선지자 아히야가 나타나, 솔로몬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열 지파를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고,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도망쳐야 했다. 한때 평화와 안정의 상징이었던 솔로몬의 왕국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솔로몬은 말년에 어떤 심정이었을까? 성경은 그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그가 저술했다고 여겨지는 전도서는 그의 깊은 회한과 성찰을 보여주는 듯하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젊은 시절 지혜를 구했던 왕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쾌락, 지식을 다 누려본 후에야 그것들이 하나님 없이는 덧없음을 깨달은 것일까? 그는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임을 뒤늦게 고백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 이것이 그의 진정한 회개였는지, 아니면 삶의 끝자락에서 느낀 철학적 고뇌였는지는 알 수 없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 후,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하나님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통치와 교만은 북쪽 열 지파의 반발을 샀고, 결국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지는 비극을 맞이했다. 솔로몬이 평생에 걸쳐 이룩했던 통일 왕국의 영광은 그의 아들 대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인간 지혜와 영광의 정점, 그리고 동시에 인간적인 나약함과 실패의 깊은 골짜기를 보여주는 한 편의 대서사시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를 받았지만,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의 유혹과 타협하며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의 삶은 눈부신 빛으로 시작하여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끝났다.

 

성전 건축이라는 위대한 업적과 지혜로운 통치로 기억되지만, 동시에 우상숭배를 용인하고 왕국의 분열을 초래한 왕. 그의 인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가졌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겸손함과 신실함을 잃어버릴 때, 그 모든 것은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발견하며, 영원한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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