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누가복음 16장 10-11절 깊이 읽기: 작은 충성이 참된 것을 결정합니다

일하루 2025. 5. 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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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16장 10절과 11절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작은 부분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만지는 물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영적인 가치와 연결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고자 합니다. 이 두 구절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일상의 작은 선택과 태도가 결국에는 가장 귀한 것을 얻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 (누가복음 16:10)

먼저 10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 말씀은 너무나 명확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ἐλαχίστῳ, 엘라키스토)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문자 그대로 아주 사소한 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책임,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는 작은 재능이나 물질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순간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 작은 돈을 정직하게 처리하는 것, 맡겨진 사소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된 자’(πιστὸς, 피스토스)라는 말은 ‘믿을 만한’, ‘신실한’, ‘진실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지극히 작은 일에 대하여 믿음직스럽고 변함없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또 그 일이 자신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맡겨진 바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작은 일에 대한 충성됨이 ‘큰 것’(πολλῷ, 폴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큰 것’은 더 많은 책임, 더 중요한 임무, 더 큰 영향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은 이미 그 마음의 바탕과 성품이 큰일에도 동일한 신실함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작은 씨앗 안에 거대한 나무의 가능성이 담겨 있듯이, 작은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 속에는 더 큰일을 감당할 수 있는 우리의 잠재력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실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작은 부분에서 믿음을 보인 사람은 큰 부분에서도 역시 믿음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 그것이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반대로,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ἄδικος, 아디코스)는 어떨까요? ‘불의하다’는 것은 ‘부정직한’, ‘올바르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작은 일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큰일 앞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작은 부정직함이 모여 큰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소한 불성실함이 쌓여 결국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와 동시에 격려를 줍니다. 만약 우리가 작은 일에서 불의했다면 돌이킬 기회가 있으며, 작은 일에서부터 충성됨을 연습하고 쌓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책임을 맡기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들이 우리의 성품을 형성하고, 그 성품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업적이나 큰 성공 이전에, 우리의 마음 중심과 일상의 작은 태도들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 (누가복음 16:11)

이제 11절 말씀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이 구절은 10절의 원리를 재물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에 적용하며, 더 나아가 영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킵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현은 ‘불의한 재물’(ἀδίκῳ μαμωνᾷ, 아디코 마모나)입니다. ‘마모나’는 아람어로 ‘재물’, ‘부(富)’를 의미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재물을 ‘불의하다’고 표현하셨을까요? 이것은 재물 자체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재물이 인간의 삶 속에서 종종 불의와 연결될 수 있는 속성 때문입니다. 재물은 사람을 속여 헛된 안정감을 주거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게 만드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24). 또한, 재물을 얻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의한 방법이 동원되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늘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재물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참된 것’과 대조됩니다.

 

이러한 ‘불의한 재물’에 대하여 ‘충성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에 대한 충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단순히 돈을 잘 관리하는 기술을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청지기로서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즉, 재물을 정직하게 얻고, 지혜롭게 사용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재물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것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자로서 신실하게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다스리며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처럼 일시적이고 때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세상 재물을 다루는 데 있어서조차 신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여기서 ‘참된 것’(ἀληθινὸν, 알레티논)은 무엇일까요? 이는 ‘불의한 재물’과 명확히 대조되는 것으로, 영원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약속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다른 영혼들을 섬기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귀한 사명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세상이 줄 수도 없는 진정한 보화입니다.

 

결국 11절은, 우리가 이 땅에서 물질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귀하고 영원한 영적 축복과 책임을 맡기실 수 있는지를 판단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보이는 것, 일시적인 것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드러내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물에 묶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선한 도구로 사용하여 하늘의 참된 보화를 쌓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의 재물 관리는 마치 하늘의 것을 맡기시기 위한 훈련 과정과도 같습니다. 작은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할 때, 더 크고 영광스러운 청지기의 직분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과 11절은 우리에게 일상의 모든 순간이 중요하며, 우리가 다루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의미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작은 일에 대한 충성, 그리고 물질에 대한 신실한 청지기 정신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참된 것’의 분량과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는 우리를 얽매려는 규칙이 아니라, 더 큰 자유와 풍성함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지극히 작은 것들’과 ‘불의한 재물’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손이 하나님의 신뢰를 얻을 만큼 깨끗하고 충성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은 충성의 무게

 

보이지 않는 작은 섬김, 티끌 속의 진실함
주님은 보시네, 마음 깊은 곳 중심을
세상의 저울로는 달 수 없는 그 무게
하늘의 큰 것으로 이어지는 문일세

 

잠시 맡은 재물, 사라질 이 땅의 것
어찌 다루는지, 주님 눈여겨보시네
썩어질 것에 매인 불충한 마음이라면
어찌 참된 보화, 영원한 것 맡기시랴

 

작은 것에 신실한 그 손길 위에
하늘의 지혜와 사랑 넘치도록 부으시리
오늘 나의 작은 선택, 작은 순종이
영원의 강가에서 큰 기쁨으로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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