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로마서 2장 4절 깊이 읽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 혹시 멸시하고 있지는 않나요?

일하루 2025. 4. 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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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로마서 2장 4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깊고 넓은 성품의 한 단면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바울이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 특히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다른 이들을 판단하던 유대인들을 향해 던지는 강력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동일한 무게로 다가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로마서 2:4)

 

이 한 구절 안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세 가지 성품과 그것을 향한 우리의 그릇된 반응 가능성,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씩 차분히 살펴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인자하심 (Kindness)

'인자하심'으로 번역된 헬라어 '크레스토테스(χρηστότης)'는 단순한 친절함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본성적인 선함, 유용함, 덕성을 나타내며, 적극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선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매일 누리는 공기와 햇빛,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인자하심'의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살아가며 회개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 인자하심은 우리가 죄를 계속 지어도 괜찮다는 허락이나 방관이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목적은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에 있다고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자비에 감격하여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반응을 보여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를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용납하심 (Forbearance/Tolerance)

'용납하심'은 헬라어 '아노케(ἀνοχή)'로, '보류하다', '억제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내려야 할 심판과 진노를 즉시 시행하지 않으시고 참고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댐이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며 물을 가두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에 대한 그분의 거룩한 분노를 참고 또 참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용납하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과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아시기에, 즉각적인 심판 대신 기다림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이 용납하심은 하나님의 무관심이나 죄에 대한 동의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과 긍휼의 표현이며, 우리가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그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납하심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안도감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회를 붙잡아 속히 회개해야 함을 인지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 (Patience/Longsuffering)

'길이 참으심'은 헬라어 '마크로투미아(μακροθυμία)'로, '오래 참고 견디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특히 사람들의 도발과 잘못에 대해 오랫동안 인내하며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 성품을 나타냅니다. 용납하심이 주로 심판의 '보류'에 초점을 맞춘다면, 길이 참으심은 시간적으로 '오랫동안' 견디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반복되는 실패와 넘어짐, 고집스러운 불순종까지도 참아내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미숙함과 잘못을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려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숙하고 변화되기를 기다리시며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이 길이 참으심은 하나님의 약함이 아니라, 그분의 강인함과 변함없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수없이 넘어지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 이것이 바로 마크로투미아, 길이 참으심입니다.

 

4.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Despising the Riches?)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길이 참으심이 부족하거나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풍성함(플루토스, πλοῦτος)"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마치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처럼,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풍성함'을 '멸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멸시하다(카타프로네오, καταφρονέω)'는 '얕보다', '하찮게 여기다', '무시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성품들을 멸시할 수 있을까요?

  • 하나님의 침묵을 오해할 때: 죄를 지어도 즉각적인 벌이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죄에 무관심하시거나 심지어 우리의 행동을 승인하신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당연하게 여기며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이 바로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 회개를 미룰 때: '나중에 회개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다리심을 이용하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편의에 따라 미루는 것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 자신의 의를 내세울 때: 로마서 2장의 직접적인 대상처럼, 자신은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고 여기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베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깨닫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성품을 당연하게 여길 때: 매일 숨 쉬는 공기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하심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감사할 줄 모르고, 그것이 우리를 회개로 이끌기 위한 것임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5. 목적: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 (Leading to Repentance)

결론적으로, 로마서 2장 4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길이 참으심이라는 풍성한 은혜의 성품들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밝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회개(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는 것을 넘어,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나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인자함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용납하심으로 시간을 주시며, 길이 참으심으로 기다리십니다. 이 모든 것은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에 기반한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이 풍성한 성품 앞에서 우리가 보여야 할 마땅한 반응은, 그 은혜를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감사함으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4절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리고 그 은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오늘도 우리 각자를 회개의 자리로 부르고 있음을 기억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자하심 앞에 서서

 

햇살처럼 부어주신 선하심 앞에
죄 많은 발걸음 잠시 멈춥니다
모르쇠 눈감았던 나의 완악함
인자하심은 빛 되어 비추시네

 

천둥같은 진노 거두신 손길 아래
숨 쉴 기회를 또 하루 얻었습니다
당연한 듯 누렸던 용납하심은
돌이키라 속삭이는 사랑이었네

 

강물처럼 흘러간 기다림 속에
무수히 넘어져도 다시 품으셨네
지루할 법 한 인내, 길이 참으심은
어리석은 나를 향한 깊은 탄식이었네

 

이 풍성함 어찌 얕보았을까
회개의 문 앞에서 머뭇거렸을까
멸시했던 마음 이제 거두고
인자하심 그 품 안에 나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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