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삶의 이야기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민준 씨의 사계절

일하루 2025. 4. 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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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장 1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김민준 씨의 아침은 늘 분주했습니다.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어젯밤 미리 챙겨둔 옷을 허겁지겁 꿰어 입었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우유를 단숨에 들이켜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항상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빨랐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둘. 중견 기업의 과장이라는 직함은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민준 씨의 마음은 늘 조급함으로 들끓었습니다. 더 빨리 승진해야 했고,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으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았습니다. 주말에도 회사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동료들과의 술자리보다는 자기 계발 서적을 읽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 '지금 쉬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결승선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마라토너처럼, 민준 씨는 숨 가쁘게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원하는 결과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번번이 좌초되었고, 승진 명단에는 늘 그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투자했던 주식은 오르지 않았고, 새로 시작한 운동은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습니다.

 

"대체 왜 나만 이렇게 안 풀리는 걸까?"

 

늦은 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깜빡이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민준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 같았습니다. 동기는 부장으로 승진했고, 후배는 번듯한 자기 사업체를 꾸렸습니다. 친구들은 넓은 집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웃는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그럴수록 민준 씨의 마음은 더욱 타들어 갔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삶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민준 씨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습니다. 그가 속한 팀이 회사 사정으로 해체되면서 졸지에 몇 달간의 무급 휴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이제 내 경력은 끝이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강제로 멈춰 서게 된 상황은 그에게 다른 세상을 볼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던 습관 대신, 그는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흙길을 밟고 나무 사이를 걸으며 그는 점차 자연의 리듬에 익숙해졌습니다. 가을 햇살 아래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겨울 찬 공기 속에서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소나무, 봄이 되자 앙상했던 가지 끝에서 움트는 새싹, 그리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무성하게 자라나는 녹음. 그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정해진 때가 있구나."

 

단풍은 가을에 가장 아름답고, 새싹은 봄에 돋아납니다. 여름에는 잎이 무성해지고, 겨울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어느 것 하나 서두르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민준 씨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살아왔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늘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우려 했고, 가을의 풍요로움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름의 열기 속에서 수확을 재촉했습니다. 겨울의 휴식과 성찰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교회 게시판에 적힌 성경 구절이 그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1-8)

 

그는 이 구절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시간들, 좌절하고 눈물 흘렸던 순간들, 사람들과 웃고 떠들었던 기억들, 소중한 것을 잃고 슬퍼했던 날들. 그 모든 것이 각자의 '때'를 가지고 그의 삶을 지나쳐 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조급함 때문에 삶의 여러 '때'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웃어야 할 때 근심했고, 쉬어야 할 때 불안했으며, 기다려야 할 때 초조해했습니다.

 

휴가가 끝나고 민준 씨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민준 씨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결과에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동료의 성공에 질투를 느끼기보다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부족함 앞에서도 좌절하기보다는 다음 '때'를 기다리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 공원을 찾아 잠시 햇볕을 쬐거나, 퇴근 후에는 서점에 들러 평소 읽고 싶었던 분야의 책을 탐독했습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등산을 하며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그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과장이었고, 아파트는 그대로였으며, 통장 잔고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평안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경쟁의 장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든 사람과 사물에게 각자의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씨앗은 일찍 싹을 틔우고, 어떤 씨앗은 더 오랜 기다림 끝에 꽃을 피웁니다. 중요한 것은 조급하게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때'를 신뢰하고 현재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팀을 구성한다는 공고가 났습니다. 민준 씨는 이전처럼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 대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며칠 후, 그는 팀원으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겠지만, 그는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저 '지금이 그 일을 할 때'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새로운 팀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과 휴가 기간 동안 얻은 성찰을 바탕으로 침착하게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과감하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조급함 대신 경청과 존중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팀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민준 씨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알고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그의 삶에도 심고 거둘 때, 울고 웃을 때, 찾고 잃을 때가 번갈아 찾아올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창밖에는 어느새 첫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때'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준 씨는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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