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이 “생각건대”라고 운을 떼는 순간, 저는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신중한 계산을 느낍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지금 당장의 아픔이 아니라, 그 너머에 놓인 장엄한 스펙트럼이었습니다. ‘생각하다(λογίζομαι)’라는 헬라어 동사는 단순 감상이 아니라, 증거를 모아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바울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고난과 영광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어 본 뒤 단언합니다. “비교할 수 없다.”
1. 문맥 속 위치
로마서 8장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소망을 펼쳐 보입니다. 1절의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 14절의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확인, 그리고 17절의 “상속자”라는 약속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바로 그다음에 18절이 놓여 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주어진 영광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바울은 그 길목에 있는 고난을 담담히 언급합니다. 고난은 영광으로 향하는 필수 관문이 아니라, 영광의 크기를 부각시키는 배경막으로 그려집니다.
2. “현재의 고난”의 범위
바울 시대의 고난은 박해·경제적 곤궁·질병·사회적 배제 등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구체적 사례로 묶지 않고 “현재의 고난”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독자가 각자의 삶에서 마주한 모든 형태의 시련을 자연스럽게 이 구절에 대입하도록 유도합니다. 한정된 예시보다 열린 표현이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3. “장차 나타날 영광”의 성격
“영광”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 빛, 존귀, 완전함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바울은 여기서 시간적 지평을 확장합니다. ‘장차’(μέλλουσα)는 반드시 도래할 미래를 가리키며, 불확실한 가능성이 아니라 예정된 사실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영광은 추상적 희망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현실, 단지 아직 ‘나타나지 않은’(ἀποκαλύπτεσθαι) 상태일 뿐입니다.
4. 비교 불가의 논리
헬라어 원문은 “οὐκ ἄξια”라는 표현으로 ‘가치가 없다’—즉,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고 따질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고난의 크기를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광의 질량이 그토록 압도적이어서, 같은 단위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합니다. 이는 고난을 무시하거나 미화하는 태도가 아니라, 영광의 절대적 우위에 주목하는 관점입니다.
5. 창조 세계와의 연결고리
뒤이어 나오는 19–22절은 피조물이 탄식하며 구원을 기다린다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인간의 고난과 우주의 신음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18절의 ‘우리에게’(εἰς ἡμᾶς)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더 나아가 창조 세계 전체로 범위를 넓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6. 신학적 함의
- 종말론적 시각: 영광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합니다.
- 이미와 아직: 성령 안에서 영광의 첫 열매를 맛보지만, 완전한 현현은 장차 올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 정체성 확인: 고난을 겪는 ‘현재’와 영광을 누릴 ‘미래’ 사이에 놓인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입니다.
7. 문학적 아름다움
단 한 문장이지만, ‘현재–장차’, ‘고난–영광’, ‘비교–불가’라는 세 쌍의 대조를 통해 강렬한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이 구조적 대비가 주제 의식을 더 또렷하게 부각시킵니다.
8. 독서 포인트
- 시제의 대비를 유의하며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소망을 설계합니다.
- 가치 판단의 전복을 음미해 보십시오. 세상 기준으로는 무거운 고난이, 영광 앞에서는 ‘비교 불가’로 전환됩니다.
-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무게를 느껴 보십시오. ‘생각건대’라는 도입부만으로도 바울의 논리적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9. 결론적 통찰
로마서 8장 18절은 고난을 제거하거나 즉각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난의 자리를 유지한 채, 더 크고 무게감 있는 영광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제시하는 신앙의 시야입니다. 고난을 외면하지도, 영광을 추상화하지도 않고, 두 현실을 동시에 인식하면서 무게 중심을 영광 쪽으로 확실히 기울입니다. 그 결과, 고난은 여전히 현실이지만 더 이상 최종 결론이 아닙니다.
빛의 저울
고요한 어둠 끝에
보이지 않는 빛이 눌려 있다
무게를 재려 손을 뻗자
어둠은 속절없이 가벼워졌다
한 줄기 영광이
저울을 뒤집어 놓는다
현재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빛 앞에서 설명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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