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사야서를 읽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에 감탄하게 됩니다. 특히 이사야 43장 19절 말씀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을 주는 구절입니다. 그 구절을 접할 때마다, 나 자신이 마치 과거의 무거운 역사를 딛고 새로운 길을 보게 되는 느낌이 듭니다. 이 말씀은 오래된 약속이지만, 읽을 때마다 여전히 생생한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느낍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리니.” (이사야 43:19)
이 말씀을 마주하면, 단순히 감정적 위안을 넘어 구체적이고 분명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광야와 사막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척박하고 건조한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그곳에 길이 생기고 강이 흐른다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너무나 강력한 비전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이 구절은 낯선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한 희망 고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함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 구절을 읽게 되면, 먼저 '새 일'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갑니다. 성경 속에서 ‘새 일’은 단지 과거를 청산한다거나 이전의 상처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새 일’이라는 단어 선택 자체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분명한 약속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전부 다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국면이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43장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압제와 포로 생활, 주변 열강의 위협과 혼란 속에서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사야서 곳곳에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특히 43장에 들어서면,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이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임을 선포하는 말씀이 펼쳐집니다. 그 가운데 19절은 바로 그 선포의 정점처럼 보입니다.
이 말씀에서 내가 주목하는 또 다른 부분은 “이제 나타낼 것이라”라는 구절입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가깝고 구체적으로 드러날 사건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이제’라는 단어가 주는 긴박함과 확신의 어조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오래 기다려온 약속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때가 되면 결코 느슨하게 또는 희미하게 지나가지 않고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광야와 사막에 길과 강을 내리겠다는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극적인 변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고대 근동의 환경과 기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광야와 사막에 풍성한 물길이 흐를 거라는 이미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말씀은 사람의 능력과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됩니다.
나는 종종 이사야 43장 19절을 떠올리면서, 과연 이 구절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자문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선언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사자들은 광야에서 길을 내거나 사막에 강을 흘러가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권력이나 기술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나님이 직접 이루신다는 것이 이 구절이 주는 믿음의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말씀 속에는 소망과 위로가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기분 좋은 말을 전하는 구절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오랜 역사와 앞으로의 계획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핵심 구절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해 있던 어려움과 무력함의 현실은 절대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새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강조하시며, 도무지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도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는 담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말씀의 배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절망적 사건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전쟁과 포로, 흩어짐과 소외감은 하나님의 백성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상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예언자는 “이제 곧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금 기억하고 확신하라는 초대라고 이해됩니다.
내가 이 구절의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반복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신실함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라는 물음은, 이미 일해 오신 하나님을 알고 있으니 충분히 기대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에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고, 끊임없이 보호받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막막해도, 새 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는 의도처럼 보입니다.
결국 이사야 43장 19절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앞두고 낙담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통해 구원을 베푸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줍니다. 그것이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약속이라고 해도, 이미 여러 차례 기적을 체험한 이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이 점을 재차 강조하며, 그들이 지나온 여정 속에서 변함없이 역사하셨던 분이 앞으로도 새 일로 역사하실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사야 43장 19절은 극심한 어려움 중에서도 꺾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인간이 초월할 수 없는 환경에서 열리는 전혀 새로운 길을 소개합니다. 언제나 과거의 놀라운 구원 사건들을 기억하면서, 또 미래에 주어질 더욱 혁신적인 사건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우 선명하고 힘 있는 말씀이라고 느낍니다. 한 구절에서 이렇게나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결국 그 ‘새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 확신은 인간의 작은 바람이나 상상에 국한되지 않고, 역사를 관통해 온 하나님만의 시간표와 방법으로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 43장 19절이 특별한 이유는, 그 장엄한 약속을 이렇게 짧고 강렬한 표현으로 요약해 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면서, 이 구절을 통해 드러나는 핵심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로운 역사의 전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포로 되었던 백성을 회복시키고, 위기 속에서도 길을 마련하셨던 분이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또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임을 예언자는 힘주어 말합니다. 광야와 사막에 길과 강을 내시는, 눈앞에 두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을 그려줌으로써,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능력을 상기시키는 듯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경외감을 깊이 느낍니다.
사막에 흐르는 길
보이지 않던 날들 사이
말없이 깔린 모래 위에
그분의 발자국이 새겨집니다
한 방울 기대할 수 없던 곳에
물소리가 깨어나고
지친 땅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사막이 사막이기를 멈추는 순간
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 길을 걷는다는 건
새 일이 일어날 것을 믿는 것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이미 걷는 오늘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오늘의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지혜 (잠언 16:9) (0) | 2025.04.02 |
---|---|
시편 50:15 말씀의 깊은 뜻: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를 때 일어나는 일 (0) | 2025.04.02 |
사무엘상 24장 13절 말씀 해설: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의 의미와 성경적 맥락 (0) | 2025.03.31 |
마가복음 9장 23절: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 예수님의 능력과 믿음의 놀라운 선언 (0) | 2025.03.31 |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중심: 사무엘상 16장 7절의 의미 (0) | 2025.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