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장 14절, 개역개정)
출애굽기 14장 14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서고, 뒤에는 애굽(이집트) 군대가 맹렬히 추격해 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 상황을 상상해 보면 두려움과 절망감이 엄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삶에서 절박함을 느낄 때 가장 하기 어려운 행동이 가만히 있는 것일 텐데,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그 메시지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1.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의 두려움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 출애굽을 감행했지만, 눈앞에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바다(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강력한 군사력과 전차를 앞세운 애굽 군대가 추격 중이었습니다. 눈으로 볼 때 모든 상황은 ‘패배’와 ‘실패’, 그리고 ‘종살이로의 회귀’가 확실해 보였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들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모세에게 말합니다. “차라리 애굽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를 왜 이 사지로 몰고 왔느냐!”라고(출14:11-12 참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발버둥쳐 왔지만 앞길이 막힌 듯 보이고, 과거의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를 따라오며, 주변 환경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는 분노와 좌절, 혹은 두려움이 뒤섞여 올라옵니다. 어쩌면 지금 어떤 문제 앞에서 매일 밤 불안에 잠 못 이루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바다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아주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달리 말하면, ‘눈앞에 펼쳐진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라 해도 나를 믿고 잠잠히 있으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 역시 하나님이 친히 관여하신다면 돌파구가 열립니다.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상황에만 고정되는지, 혹은 전능하신 분께 고정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의 태도: 왜 ‘가만히 있는 것’이 필요한가?
가만히 있는다는 표현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성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성경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적극적인 신뢰와 순종의 태도를 말합니다. 그저 손 놓고 체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모세를 따라 출애굽길에 나섰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여러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앞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너희가 할 일은 오직 나를 신뢰하고 지켜보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어떤 문제 앞에서 연약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건강 문제,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우리를 흔드는 사건과 감정은 늘 존재합니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해결해 보려고 더 애쓰고, 더 불안해하고,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계속해서 안간힘을 쓸수록 일은 꼬이고, 마음은 더욱 지쳐 버리곤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실 여지가 생깁니다. 의지와 노력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함을 붙드는 것’이 바로 가만히 있음을 통해 드러납니다.
3. 이 말씀을 통해 깨닫는 신앙의 역설
홍해 앞이라는 극적인 장면이 보여 주듯, 최악으로 보이는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홍해가 갈라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잘 아는 그 놀라운 이야기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 오히려 가장 기적적인 순간으로 반전되는 것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과 많은 유대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죽음이 모든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의 문을 열어 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사용하여,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믿고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시야가 아닌 하나님의 시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부딪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되묻기보다, “이 일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까?”를 기대하는 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바로 이 기대감이 ‘가만히 있음’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전능자의 손길이 있음을 알기에, 더는 염려로 시간을 소진하지 않고 그분이 열어 가시는 길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4. 일상의 도전과 “가만히 있음”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인터넷과 SNS, 각종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소식을 ‘순간’ 단위로 받아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잠깐 멈춰 서서 가만히 있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시대적 분위기를 느낍니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뭔가 더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것처럼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멈춤”과 “침묵”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나님께 집중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침묵의 시간은 마치 땅에 씨앗을 심고 물 주고 해가 들게 한 뒤, 조용히 기다리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씨앗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땅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랍니다. 우리 노력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잠잠히 있는 중에도 우리 인생에 변화를 주도하십니다.
가끔은 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사실 하나님이 이미 길을 예비해 놓으셨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더 나아가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일은 지금 그분을 신뢰하며, 영적인 쉼을 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자세가 우리에게 영적 회복과 분별력을 선물해 주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싸우신다’는 말의 의미
출애굽기 14장 14절에서 핵심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라는 선언입니다. 우리의 싸움이라 여겨지는 크고 작은 문제의 실상은, 사실 하나님의 싸움일 수 있습니다. 궁극적인 승리의 관건은 “누가 싸우느냐”라는 점이지요. 나의 힘,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는 사건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놀라운 전환점이 됩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면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시고 승리로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강하게 주장해서 억지로 이루거나, 인간적인 권모술수로 달성한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작용과 후유증을 남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싸워 주시는 승리는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담대함을 줍니다. 마음이 안심이 되고 안정되는 것은, 전능한 분이 우리 편에서 대신 싸워 주신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일상 중에도 비즈니스나 직장 문제에서 억울함을 겪거나, 감정적인 상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장 맞서 싸우고 싶고, 분노나 서운함을 표출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황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내 안의 억울함을 그분께 토로하며 잠시 가만히 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람이나 사건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거나, 내 마음이 안정되어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발짝 물러서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력한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6. 삶의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원리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매일같이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한 순간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분명, 우리의 삶에서 홍해와 같은 극적인 순간이 매번 찾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고 큰 파도, 어려움, 또는 감당하기 벅찬 문제들은 꾸준히 나타납니다. 그때마다 이 말씀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말씀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에 국한시키지 말고, 오늘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세요.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면, 이제는 결과와 결말을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을 가져 보길 권합니다.
7. 가만히 있지만 멈추지 않는 신앙
‘가만히 있음’은 ‘아무것도 안 함’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마음 깊숙이에서 치열하게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때로는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시간입니다. 눈에 보이는 행동이 없을지라도, 영적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와 믿음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설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어려운데도 너무 태연한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태연함(담대함)은 우리의 무지나 무모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능자를 신뢰하는 데서 오는 확신이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것이지요. 절망 중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바위처럼 단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견고한 반석 위에 우리의 일상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8. 현대의 홍해, 그리고 우리의 길
우리 시대에도 여러 가지 ‘홍해’가 존재합니다. 국가적인 경제 위기나 일자리 감소, 예상치 못한 질병 확산, 인간관계의 극심한 단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치열하게 분주해지고,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순간 멈춰서서, 과연 이것이 ‘내 힘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혹은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길이 있는지’를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문제에 매달리는 동안, 정작 하나님의 일하심은 차단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 손을 내려놓기를 기다리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 시점에 ‘홍해를 가르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이 곧바로 ‘우리의 모든 일상적 책임을 방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직장이나 가정, 사회에서 맡은 바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결정적인 싸움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태도이자,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안의 비결입니다.
9. 오늘의 삶에 적용해 보는 말씀
(1) 매일 10분의 멈춤
가장 간단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매일 10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짧은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생각의 소음과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으면, 우리의 내면에 평안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2) 마음의 전쟁을 인정하기
눈앞에 드러난 상황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부정적 생각, 두려움, 분노, 걱정’ 등이 진짜 전쟁터일 때가 많습니다. 이 마음의 전쟁마저도 하나님이 대신 싸워 주시기를 구해 보세요. 우리 스스로 억지로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하나님께 아뢸 때 더 깊은 위로와 해방감을 얻게 됩니다.
(3) 할 수 있는 일과 맡겨야 할 일을 구분하기
우리가 분명히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어 노력과 준비, 책임, 성실 등은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내 손에 쥐고 집착하지는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까지 끌어안으려다 보면 결국 벅차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은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여호와께서 싸우시도록” 믿음으로 길을 열어 두는 습관을 들여 보세요.
10. 마무리하며
출애굽기 14장 14절은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두려움과 어려움, 그 경계선에서 마주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 음성은 “힘내! 네가 다 알아서 해!”가 아니라, “네가 할 수 없는 싸움이니, 내가 너를 위해 싸우겠다. 너는 잠잠히 나를 신뢰하라”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길 때, 우리는 일상의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고, 우리의 불안은 그분의 장중에 있을 때 쉼을 얻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을 건너며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고, 언젠가 뒤돌아보면 “그때 하나님이 싸워 주셨고, 내가 결국 승리하게 하셨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때
가만히 있어도 마음은 흔들린다
파도가 몰려오면 바람에도 휩쓸린다
허공을 바라보는 두 눈에 눈물이 고여도
두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는 이,
그분이 곁에 계심을 잊지 말기를
오늘도 바람은 멈출 줄 모르고
세상은 긴박하게 굴러가지만
영혼 깊은 곳에 들려오는 그 음성,
“네가 할 수 없는 싸움은 내게 맡겨라”
그 말씀에 내가 새 힘을 얻는다
가만히 있다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내 안을 가득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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