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단어의 여정

성경 속 '율법'의 참된 의미: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

일하루 2024. 12. 15. 09:48
반응형

오늘은 성경 읽기 중 참으로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 정확한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는 용어 하나를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에서 ‘율법’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듣게 되는데, 막상 이를 단순히 ‘지켜야 할 규칙’이나 ‘엄격한 규범’ 정도로만 이해하게 되면 성경 속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은 제가 오래전 신앙 여정에서 느낀 바를 토대로, 율법의 의미를 좀 더 편안하면서도 깊이 있게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율법에 대한 첫인상: 딱딱한 규칙의 집합입니까?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저는 ‘율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치 법률 책자나 규정집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하면 안 되는 금지사항, 이것저것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즐비한 무거운 책처럼 다가왔습니다. 특히 구약성경 레위기나 신명기 부분을 살펴보면 음식 섭취 방법, 제사 절차, 심지어 위생 관련 규정들까지 매우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점을 보면 율법이 마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기에 더해 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이 율법 조항 하나하나를 지키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과 대립하시는 모습을 보면 “결국 율법은 예수님께서 넘어야 할 고지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속 ‘율법’은 그런 단순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리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지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기원: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언약

율법의 출발점을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 곧 삶의 기준을 주셨습니다(출애굽기 20장, 신명기 전체에 걸친 모세 율법 강론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해낸 선택된 백성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단순히 “이런 규칙들을 지켜라”라고 명령하기 위함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으셨고, 그 관계 속에서 그들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맺어진 언약의 규범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존중하고 배려하는 규칙들이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율법은 바로 그러한 관계적 약속의 집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본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40, 개역개정)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이 단순히 금지와 명령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율법의 핵심 주제인 것입니다. 만약 율법이 없었다면, 당시 혼란스러운 고대 사회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거룩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었겠습니까? 율법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며, 이웃과의 삶을 구체적으로 정돈해주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율법: 충돌이 아닌 완성

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 조항 하나하나를 철저히 지키는 데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태도를 종종 비판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태복음 23장)를 통해, 예수님은 율법 지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형식주의적 태도가 문제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7, 개역개정). 이는 율법이 무의미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즉 사랑과 공의, 자비와 긍휼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성취하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가리키는 참된 의미를 보여주시며, 그 길로 모두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역할: 죄를 드러내고 은혜로 인도하는 안내자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등에서 율법의 역할에 대해 심층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죄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로마서 7:7 참조).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를 죄로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길로 가면 안 된다”는 표지판이 없다면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식하게 하는 기준점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드러낼 수 있으나 죄 문제를 해결할 힘은 없습니다. 율법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다만 율법을 통해 우리는 “내게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구원이 필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진정한 자유와 구원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제가 율법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과정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한때 율법을 무거운 부담으로만 여겼습니다. 신앙생활 중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서는 안 되나” 하는 규칙들에만 몰두하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날 시편 119편을 읽게 되었는데, 다윗은 율법을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시편 119:105, 개역개정)이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편에서 율법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표현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왜 율법이 이렇게 기쁜 존재로 여겨질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점차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하나님 마음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분 뜻을 따라 살 때 오는 자유와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 율법은 억압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자,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정신적 영양소와 같았습니다.


율법, 사랑, 그리고 오늘의 신앙생활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율법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단순히 옛 시대의 규칙집으로 치부하거나 무거운 짐으로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배우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율법을 요약하신 그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회생활 중에도, 직장과 가정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율법의 정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이걸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율법을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길”로서 율법을 바라보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오늘

Ron님, 우리가 성경을 읽는 중 율법이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목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제시하신 ‘관계의 약속’이며,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방향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나침반입니다.


오늘 성경을 펼칠 때 율법 구절을 마주한다면, 그 구절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맥락 속에서 바라보면 어느 순간, 율법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법전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사랑, 그리고 성숙한 신앙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으로 들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속 율법은 단순한 계율을 넘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상징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품은 하나님의 길잡이입니다. 저, 아담은 이제 율법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풍성한 의미와 하나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오늘도 신앙의 걸음을 옮겨보려 합니다. 함께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한 걸음씩 나아가시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