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하고 또 받습니다. 작은 약속부터 인생을 건 약속까지, 그 약속들이 지켜질 때 우리는 안도하고 기뻐합니다. 반대로 약속이 깨어질 때는 실망하고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약속'과 그것을 지키는 '신실함'은 우리 삶의 신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 중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히브리서 10장 23절은 바로 이 '약속'과 '신실함'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브리서 10:23)
Let us hold fast the confession of our hope without wavering, for he who promised is faithful.

이 구절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굳게 잡고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이 권면은 단순히 우리의 의지나 노력을 촉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근원적인 진실, 즉 우리가 붙잡아야 할 이유이자 동력 그 자체를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오늘은 이 구절의 각 부분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1. 우리가 고백하는 '소망'이란 무엇인가?
먼저, 성경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은 큰 유익을 줍니다.
- 소망 (Hope, ἐλπίς):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망'은 종종 막연한 바람이나 기대를 의미합니다.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와 같은 바람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입니다. 성경의 소망은 '확실한 근거 위에 세워진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아직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반드시 성취될 미래를 향한 기대입니다. 마치 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서 해가 반드시 뜬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 믿는 도리의 고백 (Confession, ὁμολογία): '고백'으로 번역된 헬라어 '호몰로기아(ὁμολογία)'는 '같은 말을 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그분과 한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음속으로만 믿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의 태도와 언어를 통해 그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믿는 도리의 소망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확실한 미래를 나 역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나의 진리로 선포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객관적 진리에 우리의 삶을 일치시키는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2. '굳게 잡고 흔들리지 말며'
이제 성경은 그 소망의 고백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으라"고 권면합니다. 이 두 표현은 소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매우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 굳게 잡고 (Hold fast, κατέχωμεν): 이 표현은 어떤 것을 힘을 주어 소유하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붙드는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마치 거센 파도 속에서 구조용 밧줄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는 우리의 소망을 흔들려는 세상의 수많은 도전과 회유, 내면의 의심과 낙심이 존재함을 암시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붙들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 흔들리지 말고 (Without wavering, ἀκλινῆ): 이 단어는 '기울어지지 않는', '변치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좋을 때는 확신에 찼다가 어려울 때는 힘없이 무너지는 변덕스러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소망의 근원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곧고 꾸준하게 고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 명령은 우리에게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이토록 맹렬한 공격 속에서 흔들림 없이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을까요? 만약 이 구절이 여기서 끝났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핵심이자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는 바로 그 뒷부분에 있습니다.
3. 모든 것의 근거: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이는 약속하신 이가 미쁘시기 때문이라 (for he who promised is faithful)."
이것이 히브리서 10장 23절의 심장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충분한 이유는 우리의 결심이나 능력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의 성품'에 있습니다.
'미쁘시다(faithful, πιστός)'는 말은 '믿을 만하다', '신실하다',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며, 그분의 약속은 그분의 존재 자체를 걸고 보증된 것입니다.
- 우리의 소망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종 약속의 내용이 아니라, 약속한 대상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소망을 붙드는 손에 힘이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손의 힘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손과 우리의 마음에서 돌려, '약속하신 분'에게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내가 얼마나 굳게 잡는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나를 붙들고 계신 그분이 얼마나 신실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허공에 떠 있는 연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땅속 깊은 반석에 박힌 앵커(닻)와 같습니다. 배가 아무리 파도에 흔들려도 닻이 단단히 박혀있으면 결국 안전한 것처럼, 우리의 삶이 어떤 풍랑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닻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10장 23절은 우리를 향한 부담스러운 요구가 아니라, 가장 큰 위로와 확신을 주는 선언입니다. '굳게 잡으라'는 명령은, 우리가 붙잡고 있는 대상이 결코 우리를 놓지 않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초청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소망이 유효한 이유는, 그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닻
거친 파도가 갑판을 때리고
기우는 세상이 돛대를 흔들 때
내 손에 감긴 밧줄의 감촉보다
밧줄 끝에 매달린 당신을 생각합니다
모래 위에 새긴 헛된 맹세들은
밀물 한 번에 흔적 없이 지워지고
바람에 실려 온 의심의 속삭임은
굳은 믿음의 심지를 떨리게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심연 가장 깊은 곳
영원의 반석에 박힌 당신의 신실하심
내 존재의 떨림을 잠재우는 유일한 무게
요동치는 바다를 잠잠케 하는 침묵
그러므로 나는 붙잡습니다
나의 힘이 아닌, 당신의 미쁘심을
흔들리는 배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닻을 노래하며
약속은, 이미 이루어졌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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