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게 드리운 유다 땅에 새벽이 밝아오듯, 히스기야는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불씨였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우상숭배에 빠져 유다를 영적 암흑기로 몰아넣었다. 성전 문은 굳게 닫혔고, 하나님의 제단 대신 이방 신들의 제단이 예루살렘 곳곳에 세워졌다. 백성들은 길을 잃었고, 국가는 앗수르의 압제 아래 신음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죄악을 목도하며 남몰래 눈물 흘렸고, 가슴 깊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키워나갔다. 그의 눈빛에는 어둠을 걷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마치 오랫동안 준비된 사람처럼 지체 없이 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케 하는 것이었다.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불러 모아 엄숙히 명했다. "내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성결하게 하고 성소의 더러운 것을 없애라!" 그의 단호한 음성에 영적 각성이 일어났고, 레위인들은 즉시 성전으로 달려가 온갖 우상의 잔재와 오물을 깨끗이 치웠다. 십수 년간 닫혀 있던 성전 문이 다시 활짝 열리던 날, 예루살렘에는 감격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히스기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모세가 만들었으나 어느새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린 놋뱀 ‘느후스단’마저 부숴버렸다. 백성들이 수백 년간 신성시해 온 성물이었지만,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은 그 무엇이든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앙이었다.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어내는 그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심지어 유다의 통제가 미치지 않던 북이스라엘 지역까지 사람을 보내 우상을 타파하려 애썼다.
개혁의 정점은 유월절 준수였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히스기야는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보발꾼을 보내 유월절을 함께 지키자고 호소했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과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전에 나아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 조롱과 비웃음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진심에 감동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온 백성이 함께 유월절을 지키며 흘린 회개의 눈물은 유다 땅을 정화하는 은혜의 강물과 같았다. 히스기야의 통치 초기, 유다는 마치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급변하고 있었다. 호시탐탐 유다를 노리는 앗수르의 그림자가 점점 짙게 드리워졌다. 당시 앗수르는 산헤립이라는 강력하고 무자비한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주변국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제국의 위세를 떨쳤고, 유다 역시 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앗수르에 바쳤던 조공을 중단하고, 블레셋 등 주변 국가들과 규합하여 반(反)앗수르 동맹을 꾀하며 독립을 시도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다.
히스기야는 전쟁을 대비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하고 망대를 높이 쌓았으며, 무기와 방패를 대량으로 제조했다. 그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기혼 샘에서부터 성 안의 실로암 못까지 이어지는 지하 수로를 건설한 것이었다. 이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경우 성 안의 백성들이 물 걱정 없이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공사는 당대 최고의 토목 기술이 집약된 대역사였으며, 히스기야의 치밀함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앗수르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주전 701년, 산헤립은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침공했다.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이 차례로 함락되었고, 예루살렘은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다. 다급해진 히스기야는 결국 앗수르에 막대한 양의 은과 금을 조공으로 바치며 화친을 구걸해야 했다. 성전 문과 왕궁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내야 할 만큼 처절한 대가였다. 독립의 꿈은 처참하게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산헤립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대군과 함께 세 명의 고위 관리,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를 보냈다. 랍사게는 히브리 방언으로 예루살렘 성벽 위의 백성들을 향해 심리전을 펼쳤다.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하느냐? 어느 나라 신이 앗수르 왕의 손에서 그의 백성을 건져내었더냐?" 그의 교만하고 신성모독적인 말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히스기야는 인간적인 모든 수단이 끊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은 채 하나님의 성전으로 달려갔다. 그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동시에 한 줄기 빛을 향한 간절함이 솟아올랐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 기도를 요청했고, 자신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로 부르짖었다. "그룹들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그의 기도는 처절했고, 진실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전했다. "앗수르 왕이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날 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그들은 모두 송장이 되어 있었다. 거만하던 산헤립은 혼비백산하여 니느웨로 도망쳤고, 얼마 후 자신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예루살렘은 기적적으로 구원받았고, 히스기야의 믿음은 온 세상에 증명되었다.
이 엄청난 승리 이후, 히스기야는 큰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인생의 정점에서 맞이한 시련이었다. 그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셨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고, 해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가는 표징까지 보여주셨다.
병에서 회복된 히스기야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때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사절단을 보내 히스기야의 병문안을 왔다. 표면적으로는 문병이었지만, 실상은 신흥 강국 바벨론이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해 유다의 국력을 탐색하고 동맹을 모색하려는 의도였다. 히스기야는 이들의 방문에 우쭐해졌다. 그는 사절단에게 자신의 모든 보물 창고와 군기고, 왕궁의 귀한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랑하며 보여주었다. 아마도 그는 유다의 부강함을 과시하여 바벨론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동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즉시 그를 찾아와 책망했다. "왕이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나이까?" 히스기야는 순순히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고 실토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포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네게서 태어날 아들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이 끔찍한 예언 앞에서 히스기야는 절망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라고 대답하며, 다만 자신의 생전에는 평화와 안정이 있기를 바랐다. 그의 이 반응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믿음의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세대의 고통에 대한 안일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미래의 재앙 앞에서 인간적인 한계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후 15년의 연장된 삶 동안 히스기야는 유다를 계속해서 다스렸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했고, 나라의 번영을 위해 힘썼다.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영광을 얻었고,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웠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웠고, 각종 짐승의 외양간을 세웠으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바벨론에 대한 예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유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 기록될 만했다. 그의 개혁은 꺼져가던 여호와 신앙의 불꽃을 다시 살렸고, 그의 기도는 불가능해 보이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게 했다. 실로암 터널은 그의 지혜와 백성 사랑의 기념비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다. 교만으로 인한 실수는 결국 유다 멸망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아들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으며 아버지의 모든 개혁을 뒤엎고 나라를 더욱 깊은 죄악의 수렁으로 빠뜨렸다. 이는 히스기야의 영광 뒤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이자,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역사였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위대한 신앙인이었지만 동시에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얼마나 큰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순간의 교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별이었고,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성공과 실패, 믿음과 실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 히스기야, 그는 영원히 유다의 밤하늘을 밝히는 별로 기억될 것이다.
'성경 인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사: 불의 선지자를 계승한 기적의 사람 (0) | 2025.05.05 |
---|---|
아합, 비운의 그림자를 드리운 왕좌 (0) | 2025.05.04 |
불과 속삭임의 선지자, 엘리야 이야기 (1) | 2025.05.02 |
여로보암: 선택받은 자의 길, 약속과 배반의 서사시 (1) | 2025.04.28 |
르호보암: 분열의 씨앗을 뿌린 왕 (0) | 2025.04.28 |